[클래식 엿듣기 5] 소박한 음유 시인 ‘페데리코 몸포우’

춤추는거미 | 2009.08.08 20:44 | 조회 7180

[클래식 엿듣기 5] 소박한 음유 시인 ‘페데리코 몸포우’


페데리코 몸포우(Federico Mompou)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약 3년 전 봤던 카를로스 사우라(Carlos Saura)의 영화 ‘까마귀 기르기(Cria Cuervos)'에서였다. 영화 속 불운한 여인이 어두운 밤, 거실에 놓여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에 흐르는 음악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때까지 몸포우라는 작곡가를 전연 모르고 있었기에 어느 뛰어난 영화 음악 작곡가가 작업에 참여했겠거니, 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오히려 ‘Por Que Te Vas(왜 당신은 떠나가나요?)’ 라는 유행가에만 관심이 팔려 있었다.
몸포우라는 낯선 이름

한참 뒤 지인이 빌려준 시디 위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낯선 영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Federico Mompou(페데리코 몸포우).” 시와 춤(Cancons I Danses)이라는 피아노 모음곡을 들었을 때 느꼈던 전율을 이제껏 잊지 못한다. 굉장히 서정적인 음악이면서도 매우 소박하고 꾸밈없는 음악이었고 침착성과 예리함이 한음 한음마다 어려 있었다.
트랙이 하나씩 넘어가면서 다시 한 번, 진정으로 내 귀를 붙잡은 것은 6번곡이었다. 그것이 바로 몇 년 전 본, 바로 그 영화에 삽입됐던 불행한 여인의 테마곡이다. 짧으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 곡은 당시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음악이 아닌, 음악 그 자체로서 새롭게 발견됐다. 새로운 작곡가를 알게 된 후로 나는 몸포우의 다른 작품 세계를 접하고픈 욕구를 느꼈다.


몸포우와 피아니시즘
몸포우가 남긴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은 전부 그의 대표작이다. 영화에도 쓰였던 ‘시와 춤’ 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손꼽을만한 작품이며, 총 12곡으로 구성돼 있다. 이 모음곡은 1921년에서 1962년 사이 순차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6번곡은 1942년에 탄생했다. 작품을 듣고 있노라면 개중에 어떤 작품은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1872-1915-:러시아의 작곡가. ‘신비 화음’을 만들어냄)의 화성적 색채를 짙게 풍긴다. 마치 러시아 음악이 수용한 프랑스 음악의 이국적 색채의 계보의 끈을 놓지 않는 것처럼 그의 음악 안에서도 여전히 음악적 혈통의 문제는 존재하는 듯하다.
전에 들었던 말 중, 몸포우가 파리 국립 음악원 출신이라더라, 라는 근거 없는 소리가 있었는데, 이는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에게는 꽤나 그럴듯한 것이다. 그 만큼 그의 음악은 프랑스의 음악에 가깝다. 말하자면 어머니가 스페인계였던 라벨(Maurice Ravel)의 음악에 가깝고,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6인조(Les Six)의 일원이었던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나 조르주 오릭(George Auric)의 음악과 흡사한 화성적 움직임을 들려준다. 그렇지만 그들의 음악과 몸포우의 음악은 전연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가 전 인생에 걸쳐 갖고 있었던, 소위 말해 음악관이 있었으니,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작품을 쓰고 싶다’ 는 소박한 믿음이자 소망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마 그는 이런 음악관으로 인해서 유독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많이 남긴 게 아닌가 싶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가장 큰 특성은 그 안에 오케스트라의 음향적 특징을 동시에 내포하는 점에 있고, 역으로 오케스트라의 음향적 특징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대개 관현악곡을 착상할 시, 피아노라는 악기로 먼저 구상한다. 이 오묘한 사실에 근거해 몸포우의 음악은 실로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뛰어난 평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음악관을 정확히 관철시키고 있다. 화려한 대편성이 아닌, 고독한 독주 악기이면서도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악기인 피아노라는 악기를 그는 적절히 자신의 소망과 접목시킨 것이다. 게다가 그의 음악이 들려주는 것은 별나고 독특한 화성이나 리듬이 아닌 절제되고 정적이며 전통적이기까지 한 양식이다. 그는 개척자 혹은 사상가로서의 예술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박한 음유 시인에 비유할 만한 작곡가였다.
그에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헌사를..
‘전통주의자이자 음유 시인이자 위대한 음악가인 몸포우여. 당신의 음악은 정말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실로 대가들만이 할 수 있는 노련한 작업의 결과입니다. 우리 같은 범인은 넘칠 정도로 모자란 음악만을 만들어 낼 뿐이니까요. 어찌하면 당신이 만들어낸 그런 음악을, 우리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대답해주시오, 몸포우여.’



글_김용희 ds@dancingspider.co.kr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 전문사 과정 사진_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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