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6] <다크 나이트> 신화, 그 불편한 진실

춤추는거미 | 2008.10.14 21:35 | 조회 8548


<다크 나이트> 신화, 그 불편한 진실


<다크 나이트-Dark Knight/152 min./ 2008>

<다크 나이트-Dark Knight, 2008>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전의 ‘맨’영화들과는 달리 ‘맨’영화의 진화를 고민하게 한다. 맨이 아닌 ‘악당’에게 방점이 찍힌다. 악당은 왜 악당이 되었는가? 이에 대한 놀란의 대답은 악당의 성품차원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을 경계하며 사회구조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인식의 확장은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만나게 한다. 놀란은 허위로 분칠한 미국의 신화를 조롱한다. <다크 나이트>는 현대판 그리스 비극이다.
부패와 탐욕으로 타락한 도시 고담은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의 현대적 재현이다. 그렇기에 고담의 파국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자본을 매개로 범죄와 결탁한 공권력의 부패는 법과 정의에 대한 회의를 양산한다. 이러한 회의는 사회구성원들이 범죄에 가담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고담 시의 위기는 법이 사회적 정의에 봉사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이제 정의는 개인적 차원에 놓인다. 고담시는 백오십여 년을 거슬러 올라 서부에 도착한다. 악당은 조커. 보안관은 배트맨. 과연 배트맨은 게리 쿠퍼*처럼 고담시를 구할 수 있을까? *프랭크 진네만의 1952년 작, <하이눈-High Noon>의 보안관 윌 케인 역.
고담시의 대재벌 웨인 가(家)의 적자 브루스 웨인. 어린 시절 괴한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사회적 정의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한다. 스스로 강한자만이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브루스는 수년간의 고행을 통해 강한 자—배트맨은 외계생명체(수퍼맨)도, 미지의 물질로부터 감염(스파이더맨)된 것도, 돌연변이(X 맨)도 아닌 인간의 내적인 힘으로 진화된 자—가 된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힘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도덕적 균형이다. 놀란은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고민은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에는 배트맨과 조커 외에 중요한 인물로 하비 덴트라는 지방검사가 등장한다. ‘투 페이스’ 하비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착한 놈과 나쁜 놈의 대결로 일관하는 기존의 ‘맨’영화들로부터 차별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비라는 인물은 배트맨의 존재론적 고민과 밀접하게 관계한다. 자신이 필요한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배트맨에게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하비는 자신의 역할을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초법적 위치에 놓인 배트맨은 결코 세계의 내부로 편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고담시가 사회적 정의를 세우는 데 장애물일 뿐이다. 반면에 조커입장에서는 반드시 폐기해야 하는 인물이다. 조커의 계략에 말려든 하비가 자신의 별명처럼 변해가는 과정은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아있다.
선과 악을 대표하며 대립하는 배트맨과 조커는 복잡하게 닮아있는 동전의 양면이다. 아버지가 부재하고, 본래의 얼굴을 숨겨야 하며, 트라우마(Trauma: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이다. 이 둘의 트라우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기인한다. 차이가 있다면 대상으로서 아버지가 갖는 성질이다. 배트맨의 아버지는 선망 받는 기업가로 괴한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배트맨에게 아버지는 그리움이자 존경의 대상이며 지켜야할 가치다. 반면 조커의 아버지는 사회의 경쟁에서 소외된 알코올중독자로 자식에게 지울 수없는 상처를 남긴 사람이다. 그는 아내를 죽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들의 입 꼬리를 찢어 억지로 웃게 만들었다. 배트맨은 가면을 자신의 필요에 의해 쓰지만, 조커의 광대 분장은 지울 수 없는 천형(天刑)이다. 조커에게 아버지는 부정(不定)의 대상일 뿐이다.
배트맨에게 아버지는 중심이고, 조커의 아버지는 중심 밖에 놓인 타자(他者)이다. 배트맨은 중심을 채워야 하며 조커는 중심을 비워야 한다. 양자간의 트라우마의 성격은 영화의 주제를 구체화하는 은유장치로 작용한다. 현대 철학에서 탈(脫)중심이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심은 필연적으로 바깥을 타자화(化)시키며 철저히 소외시킨다. 남성이 중심에 놓이면 여자와 아이가, 사회는 개인을, 자본은 노동자를, 정신은 몸을,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교를 타자화 한다. 이렇게 타자화 된 대상은 중심으로부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다. 그 결과 중심으로부터 바깥으로 행사되는 폭력은 정당성을 갖는다. 가부장제, 전체주의, 그리스도교근본주의 등의 교조화가 그 예다. 놀란은 아버지를 중심에 놓고 사회를 통제했던 나라가 미국이라고 주장한다. 배트맨 역시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나는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놀란은 은폐된 진실, ‘국가의 탄생’이라는 신화의 이면에 위치한 ‘불편한 진실’에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한다.
조커는 하비와 레이첼을 인질로 붙잡고 배트맨에게 둘 중 한명만을 구할 수 있는 극한 선택지를 던진다. 광야에서 수행 중인 예수에게 사탄이 던진 숙제처럼 조커는 배트맨을 시험한다. 조커는 ‘네가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의 아들임을 깨달으라.’고 조언한다. 이 깨달음에 대한 딜레마는 배트맨을 넘어 모두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경찰서 취조실에서 만난 조커와 배트맨.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레이첼이 죽을 위기에 놓이자 조커에게 숨겨놓은 장소를 대라며 다그친다. 조커는 이죽거리며 답을 안한다. 오히려 조커는 배트맨 역시 자신과 같은 사회의 바깥에 존재하는 개인이며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소용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배트맨은 조커가 사회의 안녕을 볼모로 자신의 생명을 흥정했을 때, 고담시가 자신을 무법자로 규정한 사실을 알고 있다. 조커의 자극에 흔들리는 배트맨. 그는 자신의 딜레마가 조커에게 들키자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한다. 수갑이 채워져 반항할 수 없는 이에게 행사되는 폭력. 아무리 조커가 극악무도한 악당이고 배트맨이 사회적 선에 봉사할지라도, 조커에게 계속되는 폭력을 보고 있으면 불편해진다. 특히 놀란은 취조실 장면을 핸드헬드(들고찍기)로 촬영하여 자신의 의도를 노출시킨다. 마치 몰래카메라를 보는 듯이 배트맨의 동선을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 화면은 균형감을 상실한 폭력의 부당함을 보여준다. 과연 수퍼히어로는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놀란은 기존의 역할기대(役割期待)를 모호하게 만들고 보다 근원적인 폭력에 접근한다. 그의 의도는 경찰서 취조실이라는 특이한 공간에서 드러난다. 취조실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유리창을 경계로 이분되어 있다. 그래서 안과 밖은 소통이 불가능한 일방향성을 띠게 된다. 이러한 일방향성이 조커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놀란은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는 취조실의 구조적 모순을 통해 고담시의 비극을 은유한다. 내부에 있다는 것은 갇혀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내부의 상태는 외부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스스로 변화를 추동하려는 내부의 움직임은 외부에게 위협으로 작용한다. 경계면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계면의 두께는 외부에 의해 ‘은폐된 진실’의 퇴적(堆積)층을 의미한다. 놀란은 이렇게 시간을 두고 쌓인 퇴적층이 ‘신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내부에게 소비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시선은 배트맨으로 향한다. 과연 그는 경계면을 허물 수 있을까?
경찰서에서 탈출한 조커는 고담시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조커의 첫 번째 계획은 인간을 극한상황에 몰아넣고 제한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때 일체의 도덕적 판단은 유보된다. 이는 홉스가 규정한 ‘자연상태’의 인간을 의미한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기의 이익만을 쫓아 행동하기에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있을 뿐이다. 조커는 극한상황이 빚어내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적 의지로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없음을 폭로하려고 한다. 이미 조커는 관객과의 첫 대면에서 “죽을 만큼의 극한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고 말한 바 있다. 고담시는 조커가 예고한 테러에 대비하여 두 대의 페리를 준비한다. 한쪽은 시민들로 다른 한쪽은 죄수들로 분리 수용한다. 탑승한 사람들의 신분이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은 비극을 예고한다. 조커는 두 개의 배에 폭약을 설치하고 각각의 배에 기폭장치를 전한다. 조커는 정해진 시간 내에 상대방의 배를 먼저 터트리는 쪽이 살 수 있다고 시험의 룰을 설명한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외적 영역에 속해있다고 믿어왔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조커는 이를 지켜보고 있는 배트맨에게 인간에 대한 신뢰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판단착오라고 외친다. 또한 동전의 다른 면인 배트맨을 향한 회유이기도 하다. 개인의 힘이 권리가 되는 ‘자연상태’. 조커의 뒤틀린 광기는 스스로 구원하려는 몸부림이다. 과연 ‘자연상태’에 놓인 인간은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까?
조커의 두 번째 계획은 하비의 변태(變態)에 있다. 하비는 배트맨을 대신하여 고담시의 법과 정의를 합법적으로 행사할 인물이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고담시를 가나안으로 변모시켜야 하는 희망의 아이콘이다. 만일 하비가 시민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악당의 모습을 보이면 고담시는 절망의 나락으로 급전직하(急轉直下)하게 된다. 하비의 변태(變態)는 고담 시의 트라우마로 이어진다. 결국 인간은 ‘자연상태’를 통제하는 스스로 합의한 계약을 파기하기에 이른다. 이는 역사의 퇴보를 의미한다. 불행하게도 하비는 조커의 시험에 들고 만다. 신의 가혹한 운명은 그가 조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한계를 남겼다. 육체는 불구가 되었고 정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비는 조커가 일러준 대로 조커에게 매수된 경찰관들을 찾아 복수하고 만다. ‘투 페이스’ 하비의 밝은 면은 사라진다. 이제 하비는 배트맨의 검거대상일 뿐이다.
조커의 마지막 계획은 배트맨의 딜레마를 자극하는 것이다. 배트맨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했고, 레이첼과 맞바꾼 고담시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 또한 조커를 잡기위해 동원한 방법(고담시 전체를 도청하는 비윤리적인 행위)은 자신의 기술적 후원자인 폭스 박사를 잃게 한다. 결국 배트맨은 고담시의 범죄구조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조커를 찾아야하고, 변태한 하비의 광기를 막아야 하며, 배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배트맨이 지키려고 했던 가치들은 조커에게 저당 잡히고 만다. 조커와의 싸움에서 실패한 배트맨은 끝내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의 딜레마는 비극을 이끈다.
(가) <다크 나이트>의 결말은 헐리웃 고전 웨스턴을 차용한다. 배트맨은 게리 쿠퍼처럼 악당들을 소탕하고 앨런 랏드**처럼 고담시를 떠난다. <셰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가 목 놓아 부르는 ‘셰인’이라는 이름은 오십여 년을 관통하여 고담시의 배트맨에게 맺힌다. 외로운 순례자 배트맨은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죠지 스티븐스의 1953년 작, <셰인-Shane>의 총잡이 셰인 역.
영화 <다크 나이트>의 결말이 표면적으로는 배트맨의 거룩한 승리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양상을 띤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전혀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배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고담시의 시민들이 죄수들을 동일한 인간으로서 존중한 결과가 아니다. 기폭장치를 누르면서 생겨나는 죄책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누군가 나서서 눌러주기를 바란다. 인간의 이기심이 지체를 가져왔을 뿐이다. 조커가 미처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 작동하는 양태이다. 놀란은 일말의 양심이 비극을 막은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상투적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극한상황에 대처하는 의사결정구조의 내밀한 폭력성이다. 비극의 근원은 인간의 이기심이 아니라 이를 학습하게 하는 사회의 구조·체제에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극한상황에서도 현대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 즉 토론을 벌이고, 논리를 만들어내며 시민들의 의사를 투표에 붙이는 절차를 따른다. 시민들의 의연한 모습은 불편함을 일으킨다. 배안에서 벌어지는 다수가 소수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살아야 하는가’라는 투표 의제는 ‘누가 죽어야 하는가’를 동시에 묻고 있다. 396대 140이라는 투표결과는 이 물음에 상생이라고 외치는 작지 않은 목소리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수는 소수를 묵살한다. 다수의 시민들은 죄수들이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기폭장치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쪽은 죄수들이다. 그들은 기폭장치를 바다로 내던지고 상대 쪽의 처분을 기다린다. 놀란은 관객들의 상식을 깨고 되묻는다. 죄수들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믿는 선량한 시민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인식은 순전히 인간 내부의 문제인가?
조커가 체포되기는 했지만 고담시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는다. 배트맨은 끝내 경계면을 허물지 못한다. 오히려 경계면을 한층 두껍게 했다. 배트맨이 한 일은 광기에 사로잡힌 지능적인 악당 한명을 잡았을 뿐, 고담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영화는 끝난다. 놀란은 배트맨의 딜레마를 설명하며 실제의 결말로 이끈다. 고담시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은 다음의 질문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여전히 배트맨은 고담시에 필요한 존재인가? 효용가치가 유효하다면 고담시의 미래는 없다. 다시 하비 덴트와 같은 인물을 물색할 것인가? 그리하면 폐기된 하비로 인해 고담시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한다. 배트맨의 딜레마는 순환의 꼬리를 물며, 끝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을 저지르고 만다. 그의 중심에 대한 강박관념은 진실의 은폐로 이어진다. ‘분별없는 열정’의 소유자 배트맨. 고담 시의 사회적 정의를 세우기 위해 배트맨은 하비의 죄를 스스로 사(赦)하고 고담시의 새로운 탄생을 알린다. 놀란은 고담시의 새로운 탄생을 해체하며 이 세계가 가짜(Pseudo)임을 밝힌다. 날조된 ‘신화’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태도는 인간의 몫이다. 그의 몫은 신화에 볼모가 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광대-Pagliacci>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극중 광대 카니오가 연극과 현실을 혼동하여 극중 여주인공이자 자신의 아내인 넷다를 살해하는 이야기다.
“La commedia finita (이제 희극은 끝났소).”
무대를 피로 물들인 그가 관객에게 마지막으로 외치는 말이자 크리스토퍼 놀란의 논평이다.

 
글_ 윤결 ds@dancingspider.co.kr 영화 시나리오 작가 사진_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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