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루루의 미술 속 '대한민국 직딩들의 세계'

춤추는거미 | 2007.03.28 21:54 | 조회 6257

미술 속 '대한민국 직딩들의 세계'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깊이가 이제 봄이 점점 더 완연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집에 오는 길, 도서관에 들러 미학자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빌렸습니다. 한국인의 모습을 근대와 전근대, 미래의 시제로 표현한 작은 테마 밑에는 다양한 우리시대의 '우리들'의 자화상이 콜라주 되어 있지요.

쓱 한번 지하철에서 훑어보다 고 구본주 선생님의 조각작품들이 보이더군요. 살아계실 때부터 이분의 작품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이분의 '배대리 시리즈'는 정말 직장인인 제겐 뼈아프게 와 닿는 조각작품들이었지요.
사오정과 오륙도를 넘어 삼팔선이란 말까지 나오는 시대. 더 이상 시스템에 붙어먹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의 자화상 속에 우리 직딩들의 모습을 담아낸 구본주 선생님의 작품을 오늘은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분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현대의 도시 노동자의 모습을 잘 표현하신 분이죠. 저는 이분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과연 이것이 조각작품인가 하고 놀랐었습니다. 마치 실제 사람 위에 구리액을 부어낸 듯, 표정과 옷차림, 넥타이를 맨 형상이 직장인들의 고초와 긴장, 조직 속에서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이렇게 명징하고 포착해 낼 수가 있을까? 정말 놀라움으로 가득했지요.
어린 시절 아빠의 떨어진 뒷굽을 보면서, 주말에 몰래 들고 나가 수선을 하고 광이 나게 닦아 놓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댓가로 받은 1000원의 용돈. 예전 윤흥길 씨가 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었죠. 이 작품을 볼 때, 작품 속 권씨 아저씨를 생각했습니다.
귀가 길엔 항상 가족을 위해 두 손 가득 먹을걸 사오는 것이 아버지에겐 당연한 것 인줄 알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것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꽤 긴 시간을 연수란 걸 하게 되죠. 저도 용인에 있는 그 자칭 사관학교라 불리는 연수원에서 6시에 일어나 구보하고 강의 듣고 산악자전거도 타면서 참 쉽지 않았던 시간들을 보냈었답니다. 자본주의 시대엔 권력의 중심점이 국가가 아니라 기업으로 넘어오면서 기업들이 구성원인 직원들의 신체까지 규율하고 조정한다는 진중권의 말이 가슴에 와 닿더군요. 하긴 모 회사에선 협력업체 사람들을 불러 마라톤을 시키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한 분은 심장마비로 죽기까지 했으니까요.

작품 속 주인공처럼 대기업의 눈치를 보고, 상사의 눈치를 보고, 요즘은 다면평가다 뭐다 해서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는 직딩들의 눈칫밥은 과연 어느 정도의 뜸이 든 밥일까....하고 웃어봅니다.
특히 한국처럼 아직까지도 주말에도 회사를 위해 당연히 일해야 한다는 식의 개발 독재풍의 사고가 남아있는 지금, 여전히 이 땅의 직딩들은 그 힘들고 비루한 생의 나날들을 채워내고 버텨내기 위해 고생합니다. 배부른 소리가 아니냐고요? 수많은 실직자들이 넘쳐나는데 무신.....할 분들이 많겠지만 입장이야 다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구본주 선생님의 배대리 시리즈를 좋아하는 게 이때가 제가 진짜 대리직급을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라서요. 사원도 아닌 것이 중견간부도 아닌 것이, 항상 중간에 치여서 우리에게도 내일이 올까 하고 살아가는 직딩의 모습이 너무나도 눈물 나게 했습니다.

복도를 걷다가 문이 열린 낯선 공간에 눈이 끌린다. 십 수 년을 한 직장에 다닌 내게도 아직 회사 건물 속속들이는 낯이 설다.
가보지 못한 곳, 열지 않은 곳이 이렇게 많구나. 살면서 수없이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 속도 저렇듯 여러 길이어서, 숨겨둔 구석구석을 품고 있어서 가보지 못한 곳이 많구나 생각하니 멀었지 싶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속도 지나지 못한 길과 가서 닿지 못한 그만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아, 아직도 더 많이, 더 끝까지 가보아야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이명희의 <어느 날 회사에서> 전편

대한민국 직딩 여러분, 힘들어도 우리 버텨요. 힘내시고요. 대한민국 파이팅. 멋지게 비상하는 시간들, 쉼의 시간들 가져보세요.

글*사진_ 발칙한 루루 (blog.daum.net/film-art) * 본 글은 '김홍기의 문화제국'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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