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춤의 재창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까

춤추는거미 | 2006.09.05 01:55 | 조회 7836

전통춤의 재창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까


이지영_양산 사찰학춤에서의 자연형상적 동작 연구 및 해석 “학이 밭에 내려와 우줄우줄 춤추니 마음이 넉넉하다” ‘바리바리 촘촘디딤새’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2006.8.23
하나. 멀리서 바라보기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는 배정혜 선생이 국립무용단 예술 감독으로 온 뒤에 한국 춤의 대중화를 꾀하며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현재 6년 째 지속되고 있으며, 안무자의 해설, 전통춤 시연, 전통춤을 바탕으로 한 창작 춤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번 팸플릿에서 배정혜 예술 감독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창작, 이것은 관념적인 작업이 아닌 실질적인 논리와 근거로서 이루어지는 창작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우리가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소리 높이 외치기는 쉬워도 실제 작업으로 드러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면 전통을 그대로 옮겨오기 십상이고, 아니면 전통에서 무엇을 가져오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운 작품이 태반이다. 기본적으로 전통의 재창조라는 숙제 앞에 선 안무자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한다.
둘. 가까이 바라보기
첫째 마당: 여느 공연과 달리 시작 시각이 되자 안무가 이지영은 앞으로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준비한 프린트물의 순서대로 양산 사찰학춤의 유래와 특징 등을 설명했다. 이내 시연자의 시범을 곁들이면서 동래학춤과 양산 사찰학춤의 춤사위를 비교하여 귀와 눈으로 차이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관객에 대한 자상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둘째 마당: 83세의 고령이신 김덕명 선생이 나와 양산 사찰학춤과 인연을 맺게 된 집안 내력을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냈다. 김덕명 선생은 7살~17살까지 절에서 공부했고, 어릴 때부터 춤추고 뚜드리는 걸 배웠다고 했다. 지금 작은 아들이 승려라고 한다. 김덕명 선생은 안무가가 이렇게 사찰학춤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거 하나라도 연관시키려고 하는 태도가 고맙다고 했다. 김덕명 선생은 양산 사찰학춤의 24가지 기본동작을 시연하였다. 학을 모방한 듯한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고즈넉한 한 마리의 학이었다. 풀어진 팔에 갑자기 힘을 주어 ‘동료들에게 위엄을 주는 사위’를 보일 때는 노련한 힘이 느껴졌다. 특히 툭 꺾인 그의 손목에서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막힘이 없는 자유와 천진스럽고 투박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으며, 과장되지 않은 시선은 관객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셋째 마당: 양산 사찰학춤을 안무가 나름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무대이다. 생음악 소금 반주에 맞춰 이지영의 독무가 있었고, 뒤이어 무대 뒷막으로 들어가자 깊은 숲 속의 영상이 무대 뒤를 가득 메웠다. 깊은 숲 속에서 한 마리 학이 헤매는 듯한 모습이 영상으로 보인다. 양산 사찰학춤의 투박한 맛은 사라지고 고운 춤의 맛만 가득했다. 왜 그런 고운 춤 속에서는 더 단순하고 단일한 맛만 느껴지는 걸까. 영상이 끝난 뒤 조재혁의 1인무와 이어서 여성 3인무의 춤이 이어졌다. 현대무용이라고 해도 괜찮을 그들의 춤은 보는 내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양산 사찰학춤에서 어떤 요소를 계승하려고 하였는지 알기 힘들었다. 그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도 상관없을 듯한 움직임들이 계속되었다.
넷째 마당: 관객들과 안무가와의 대화의 시간이다. 안무가에게 양산 사찰학춤에서 무엇을 계승하고자 노력했는지 질문했다. 그는 계승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퓨전으로 춘 것이고 양산 사찰학춤에서 몇 가지 동작을 넣으려고 했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어떤 관객은 학이 서식하는 곳은 강인데, 영상을 왜 산에서 찍었냐고 물었다. 그는 가까운 남산 뒤에서 찍었고, 그런 것 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서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누구는 4명이 춤출 때 음악이 무거운데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25현 가야금으로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셋. 내 마음 들여다보기
“바리바리촘촘 디딤새”라는 기획도 좋았고, 안무가도 나름대로 정성껏 많은 준비를 했다. 두 종류의 시연과 영상과 생음악 반주와 프린트물까지. 그런데도 한없이 아쉬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안무가는 너무 쉽게, 너무 단순히 생각했다. 자신의 창작춤 속에 양산 사찰학춤의 몇 가지 동작을 단순히 차용해 넣으면 전통춤을 재창조 하는 걸까. 아니다. 적어도 형식적 측면을 계승하려고 했다면, 양산 사찰학춤의 특징이라 파악한 그 어떤 동작을 채택하여 작품 속에서 주제 동작과 변주 동작으로 구성해 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원형의 그 동작을 더욱 풍부하게 변형시킬 수 있다. 양산 사찰학춤의 움직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다”라는 생각만이 머리를 맴돌았다. 김덕명 선생의 말씀 중에, 프랑스에서 국립무용단에 와서 가져갈 작품을 고르다가 없다고 판단한 뒤에 자신의 양산 사찰학춤을 초청해 갔다고 하면서,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한국적이냐 아니냐를 판단한 거라고 지적한 내용이 떠올랐다.
우리는 전통춤을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너무 많은 걸 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전통춤에서 우리가 남겨야 하는 것은 무얼까. 먼저 전통춤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하겠다. 각각의 전통춤에서 동작소와 독특한 형식미를 빌려와야 한다. 그리고 동작소들을 잘게 쪼개어 다양한 변주동작을 개발하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 춤 언어의 저장고를 확장시켰으면 한다. 나는 감히 이러한 방식의 노력이 한국 춤의 현 단계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글_ 춤바람 조경아 choom71@hanmail.net 사진_ 국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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