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춤 집단 ‘가관’의 <토끼의 간- 수궁광녀전>

춤추는거미 | 2006.11.30 21:19 | 조회 6446

창작 춤 집단 ‘가관’


최근 무용계는 위기가 왔음을 실감하며 대중성과 예술성의 조화 속에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따라서 연극과 영상매체 그리고 마임과 힙합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창작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있어 일부 예술작품의 질적 수준에 관한 우려의 말들도 있다. 이러한 무용계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인디무용단 '가관'의 공연이 23일부터 25일까지 문화일보홀에서 이어졌다.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와 함께 락 음악이 마치 콘서트장의 오프닝을 연상케 했고 객석과 무대의 구분 없이 비치는 조명은 관객 스스로가 마치 무대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작품 제목을 각인시키듯 객석 뒤에서 토끼 세 마리와 두 마리의 거북이가 등장하며 <토끼의 광 - 수궁광녀전>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 듯이 어렸을 적 한 번은 들어보았음직한 전통설화 <수궁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으며, 2005 제 3회 여성 미술제 ‘판타스틱 아시아’에 초청된 사진작가 퀸 콩의 작품 <간이 배 밖에 나온 여자>에서 주제를 확장한 작품이다. 현대사회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통설화의 구성과 함께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무용, 영상, 극의 하모니>
작품의 스토리는 용왕의 요구로 인해 거북이 두 마리가 토끼의 간을 구하러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스토리를 이어가는 것은 영상의 몫이다. 영상은 설화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마치 그림책을 읽는 느낌이다. 또한 전체 작품의 단락을 형성하며 극적 구조로 전개된다. 영상과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은 캐릭터의 심리 혹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영상이 끝나면 춤이 이어간다. 육아, 가사, 일을 나타내는 토끼의 일상적 움직임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다 점점 느려지며 활기가 없다. 그리고 긴장감을 더하던 시계소리가 잦아들면 핀 조명을 받은 여성이 무대 중앙에 비춰진다. 그녀의 움직임에서 지쳐버린 육체와 심리적 갈등이 그대로 그려진다. 이렇게 하나의 단락은 마무리된다. 결국 영상, 무용, 극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관객들에게 작품의 이해를 도우며 쉽게 다가가는 것이다.
<여기 이 곳, 그녀들의 이야기>
권력. 지위를 상징하는 중절모를 얻기 위해 뛰어다니는 토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절모는 결국 남성에게 주어진다. 현대 여성의 사회적 고충과 불합리성을 고발하는 장면이다. 또한 목을 조르고 얼굴을 발로 짓밟는 구타장면, 성욕을 채워가기 위한 도구로 여자를 다루는 모습들은 남성들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상처로 붉게 물든 토끼들의 모습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직장여성의 모습이 묘사된다. 그리고 거북이의 남성을 지칭하는 신체부위가 강조되는 움직임은 권위주의에 빠진 일부 현대남성을 풍자한다. 줄곧 우둔한 캐릭터로 묘사된 용왕과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거북이의 모습들 역시 비판적 시각에서 본 남성들을 대변한다. 작품의 마지막, 고대하던 토끼의 간을 먹고도 죽음을 맞이한 용왕과는 달리 토끼들은 회생한다. 두 마리의 토끼가 거울을 보는 듯 마주보며 서로의 탱고를 추는 장면에서 작품은 미래여성의 희망을 예고했다.
<대중과 예술이 어우러지다>
인디란 대부분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독립적으로 자신의 예술 활동을 펼치는 단체를 지칭한다. 창작 춤 집단 ‘가관’은 이러한 점에서 미뤄볼 때 인디무용의 대표적인 단체로 꼽을 수 있다. 무용이 가진 고유의 형식에서 탈피하고자 했으며, 그들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한다. 물론 실험적일 수 있는 시도들이 무대위에서 그대로 연출되기에 부작용도 따른다. 다시 말해 영상, 극, 마임과 춤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한 무대위에서 어우러짐으로 각 예술이 지닌 고유의 색깔이 옅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스토리 전개나 구성에 따라 배우가 춤을 추고 무용수가 연기를 하게 되는 상황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인디단체는 소규모의 예산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복합장르의 추구에 있어 환경적 어려움이 따른다. 이러한 어려움은 소품이나 의상의 미비함으로 드러나며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품<토끼의 광 - 수궁광녀전>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 다소 아쉬움이 따르긴 했으나 신선한 시도는 높이 살만하다.
서두에서 잠깐 서술했듯 낙관적이지 못한 무용계의 현실에서 ‘가관’의 이러한 도전은 외면하던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다소 엉뚱하지만 사회의 문제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가는 그들의 무대에서 무용을 사랑하는 진심이 묻어난다.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손을 내미는 이들의 용기가 무용계가 닥친 위기의 단비가 될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하며 독창적이고도 지혜로운 가관의 꾸준한 활동을 기대한다.


글_ 랄랄라 ds@dancingspider.co.kr 사진_ 서울 프린지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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