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에서 부유할 때 주목할만한 공간들

춤추는거미 | 2005.12.28 17:39 | 조회 5761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반드시 어딘가로 가야 한다 . 아니 어딘가로 가기 위해 누군가를 만난다 . 그리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든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하다못해 노래를 부르거나 ,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해도 돈을 내야 한다 . 따라서 21 세기의 한국에서 서식하고 있는 인간이란 종은 유료 공간이 아닌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잊어버린 종족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 ‘연애에는 돈이 든다 . 하지만 **** 에서는 조금 덜 든다 . "라는 잠언을 기억하라 . 바야흐로 지구 역사상 가장 지능이 높은 ( 지능만 높은 ?)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머니덴스로 발랄하게 진화 중이시다 .
거리는 곳곳에 간판투성이다 . 아니 간판이 거리를 점령했다 . 모든 간판은 더 크고 , 더 화려하고 , 더 천박하기 위해 태어난다 . 더 늦게 생긴 간판이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천박하게 반짝인다 . 골목과 골목은 조잡한 신조어와 모호한 이미지와 선명한 원색들이 뒤섞여 번쩍이는 간판들로 가득하고 , 이미지의 눈들은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계시다 . 하여 , 그들은 이미 신 ( 神 ) 이다 . 언제나 ,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또한 저희 사제와 함께"하는 것 . 간판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메시아다 . 삼성과 마이크로소프트 , 베스킨라빈스와 스타벅스 , 상표와 기호가 세계를 정의한다 . 심지어 우리는 쿠사나기 소령이 되지 않더라도 언제나 네트의 바다에 다이브할 준비가 되어 있다 . 불행하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 우리는 항상 혼자가 아니다 . 그리고 동시에 , 다행스럽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우리는 언제나 혼자이다 .
간판과 간판 사이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 그리고 거리에서 우리의 지갑은 입을 벌릴 준비를 한다 .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오른손인지 왼손인지의 엄지와 검지는 그 촉감 좋은 가죽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지만 , 고민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 자동 현금 지급기와 편의점이 우리 곁에서 24 시간 항시 대기 중이시기 때문이다 . 그곳이야말로 현대의 신전이다 . 제의는 간단하고도 싱겁게 끝난다 . 모든 절차가 끝나고 모든 것이 잊혀질 즈음에 카드 청구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편함에서 맹수처럼 뛰쳐나온다 .


詩人 남진우의 말마따나 여기는 ‘슬픈 꿈이 방황하던 거리 ,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아니라 , 간판과 간판이 서로를 규정하며 전복하는 주말의 거리이다 . 우리는 그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 잃어버린 길은 빠져 나오기 어렵다 . 우리는 금새 포기하고 싶어진다 . 아무 간판에 몸을 맡기고 내 생의 몇 할을 , 월 지출액의 몇 할과 함께 낭비하고 싶어진다 . 하지만 쉽게 정복당하지 말기를 .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인 우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 그리고 고민해야 한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향을 선택하는 것은 , 그야말로 자본에 종속되는 것과 동시에 주체가 되는 행위이다 . 우리는 자본주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반자본주의적인 존재들이다 . 선택과 협상이야말로 그들 ( 혹은 그것 ) 을 엿먹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간판 앞에서 , 입구 앞에서 , 그리고 24 시간 편의점 앞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순간을 걸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 이왕이면 더 괜찮은 공간에서 , 이왕이면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 이왕이면 더 그럴듯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의무다 .


리와인드 .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어딘가로 가야 한다 . 아니 어딘가로 가기 위해 누군가를 만난다 . 그리고 맥주를 마시든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하다못해 노래를 부르거나 가만히 앉아 있으려고 해도 돈을 내야 한다 . 그러므로 우리는 이왕이면 그럴듯한 공간을 찾아야 한다 . 좀 더 그럴듯한 공간 . 내게 그곳은 괜찮은 음악과 적당한 가격과 매너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다 .


홍대 전철역에서 출발하자 . ‘걷고 싶은 거리"라고 명명된 ‘전혀 걷고 싶지 않은 거리"를 지나 스타벅스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 편으로 나무 간판에 삐뚤빼뚤 엉성하게 적힌 하얀 글씨가 보인다 . 거기가 [ 작은 상자 ] 다 . 천장이 낮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문을 열면 좁은 공간을 점령하고 있던 거대한 음악이 달려든다 . 어떤 때에는 메탈리카의 기타 프레이즈가 귀를 물어뜯고 어떤 때에는 바흐의 바이올린 음계가 속옷을 들추고 맨살을 쓰다듬는다 . 작은 상자는 그런 곳이다 . 그야말로 우리는 상자에 갇혀 누군가 상자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
[ 작은 상자 ] 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 입구로 나와 스타벅스를 지나 길을 건너자 . 종로 빈대떡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왼쪽 건물 2 층에 붉은 하이힐의 간판이 , [ 로베르네 집 ] 이 보인다 . 하얀 타일로 감싼 공간 , 아직 이름을 떨치지 못한 젊은 미술가들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는 공간이다 . 화장실을 연상시키는 이곳의 인테리어가 불편하다면 , 계단을 내려와 다시 앞으로 가라 .


일본 액세사리 전문 매장 Ginkyo 와 나란히 붙어 있는 좁은 계단 , 고개를 들면 하얀 바탕에 푸른 선이 그어져 있고 위 아래로 "bar/ 다 " 라고 적혀있다 . [bar 다 ] 는 이상한 곳이다 . 그곳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지 않지만 모두가 물고기처럼 물을 마신다 . 이상한 물고기들이 종종 들렀다가 망망대해로 사라진다 . 배불뚝이 사장님과 무용수 바텐더의 유쾌한 목소리와 단골들이 돌아가며 틀어주는 음악들은 남도 민요에서 독일 오페라까지 오락가락 한다 . 자정 이전에는 블루스와 재즈를 , 자정 이후에는 흘러간 가요를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물론 이것은 정해진 룰이 아니다 . 혼자 앉아 술 한 병 손에 들고 홀짝거려도 좋은 곳이다 .


[bar 다 ] 를 나오면 [ 빛 ] 에 가보자 . 같은 건물에 있지만 입구는 반대편에 있으니 주의할 것 . 심야에도 번쩍이는 옷가게들 사이에 나무로 만든 발코니와 계단이 눈에 띈다 . ‘독신"인데다 애인도 ‘없는" 사장님이 얼마 전 직접 공사했다 . 들어가면 어두 침침한 공간에 Nirvana 와 xiu xiu 의 음악이 뒤섞인다 . 창문에는 Cat Stevens 와 Roxy Music, 그리고 Velvet Underground 의 포스터가 눌러 붙어 있고 , 불친절한 사장님은 손님이 들어가거나 나가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 혼자 앉아 있어도 말도 걸지 않는다 . [bar 다 ] 가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이라면 [ 빛 ] 은 아무하고도 친구가 될 필요가 없는 곳이다 . 신청곡을 적어낼 수 있지만 , 분위기에 맞지 않는 곡이면 거절당하기도 하는 곳 . [ 빛 ] 은 그래서 다락방 골수들이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 하지만 겁먹지 마시라 , 인간은 적응이 빠른 생물이다 .

[ 빛 ] 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처 쭈욱 걷자 . 秀 노래방과 럭셔리 秀 노래방을 지나면 택시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2 차선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 택시들은 현대 도시의 낙타다 . 여기는 사막이다 , 하지만 도시의 낙타들은 사납고 거칠며 빠르다 . 이 동네의 택시는 항상 과도하게 넘치니 차가 끊겨 집에 못 갈 걱정은 하지 말자 . ‘오빠 믿고 잠깐 쉬었다 가자"는 말도 믿지 말자 . 홍대 앞에는 쉴 곳도 없거니와 , ( 오빠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 내키지도 않는 오빠와 잠깐 쉬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 당신이 오빠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죄송하다만 ).
각설하고 , 거침없이 길을 건너자 . 이번에 갈 곳은 찾기가 애매하니 ,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길을 건너 조금 내려가다가 등장하는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 퀸스 헤드 ] 가 등장한다 . 지나가라 , 우리가 갈 곳은 ‘여왕의 대가리"를 입구에 걸어둘 정도로 무시무시한 곳이 아니다 . 더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좁은 골목이 등장한다 . 그 길을 정의하는 댄스 클럽들의 화려한 네온사인과는 대조적으로 ,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골목이다 . 용기를 내서 들어가면 곧 오른쪽에 [Ladyfish] 가 보인다 . [Ladyfish] 는 1998 년에 데뷔 음반을 낸 여성 아티스트 레이디피쉬가 운영하는 작은 술집이다 .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훤한 공간에 테이블이 몇 개 , 방석이 몇 개 보인다 . 조명보다 촛불이 더 밝은 곳 , 도대체 제목을 알 수 없는 포스트록 계열의 음악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곡이 쉬지 않고 흐르는 곳이다 . 게다가 술에 약을 탔는지 약에 술을 탔는지 , 물만 마셔도 취할 지경으로 몽환적인 곳 .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나오면 눈 앞에는 다른 세상이 꿈틀거리고 있다 .
사실 , 우리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군데의 공간을 지나쳤다 . 그 중에는 [Smoke] 도 있고 [Girl Spot] 도 있다 . [D ‘ avant] 과 [ 이리카페 ] 에는 스쳐 지나지도 못했으며 , 얼마 전 인사동에서 홍대 앞으로 옮겨온 [ 섬 ] 에도 들르지 못했다 . 그리고 더 많은 공간들 . 공간은 항상 새로 정의되고 공간의 의미는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살아나고 죽어나간다 . 공간들은 저마다 고유한 ID 코드를 가지고 있고 , 우리는 공간을 옮겨 다니며 내 속에 있는 단말기를 통해 공간에 접속한다 . 어떤 곳에서는 에러가 발생하고 어떤 곳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 . 처음엔 문제가 없다가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 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있다 .
하지만 우리는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어야 한다 . 디지털이든 리얼월드든 , 우리는 어차피 노마드로 태어났고 노마드로 살아간다 .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 모니터 앞에서든 바텐더 앞에서든 우리는 역시나 , 혼자다 . 사랑하는 그이와 같은 침대에 누워 있을 때에도 우리는 혼자다 . 동창들과 술을 마시며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을 때에도 우리는 혼자다 . 이 즈음에 엠에센이 말씀하신다 . 부재하는 자는 붉은 천을 두른 자이고 , 존재하는 자는 녹색으로 빛나는 자이니라 . 어디서나 친구를 찾으려고 애쓰지 마라 . 혼자 즐기는 법을 배워야 혼자 살아남는다 . 기억하라 , 당신은 불행하므로 행복하고 , 불완전하기에 완벽하다 . 말장난이라고 ? 농담이 아니다 .
이 글은 작은 공간에 대한 굶주림과 홍대 앞이라는 공간에 대한 기대에 유원지 애드벌룬 마냥 잔뜩 부풀어오른 당신을 위한 가이드 텍스트이다 . 설마 , 몰랐다고 ? +_+

 
 
글_ 차우진 lazicat@empal.com 사진출처_www.goodconcert.co.kr * 본 글은 www.goodconcert.co.kr/goodzine 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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